병산서원

9개 서원

병산서원은 1613년에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사지를 기반으로 맞은편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는 곳에 입지하고 있다. 병산서원은 만대루를 통해 한국 서원 누마루 건축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병산서원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와 양동”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병산서원은 류성룡의 제자, 후손, 그리고 안동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서원은 교육기관에서 출발했지만, 교육적 기능 뿐만 아니라 점차 사림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모습의 한 측면 을 병산서원에서 볼 수 있는데, 병산서원은 만인소를 조선시대에 최초로 작성하는 등 공론장으로서 서 원 역할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곳이다. 병산서원 목판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 국의 유교책판”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병산서원의 주향인물은 류성룡(1542-1607)이다. 류성룡은 16세기 후반 영의정 • 도체찰사로 임진 왜란을 수행한 인물이다. 사림이 중앙 정계에 최고위직에 진출하였다는 사실은 사림이 지역을 넘어서 주요 정책과정의 핵심적인 위치로 발돋움한 관료형 사림의 유형을 나타낸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과정에 서 『징비록』, 『군문등록』 등 여러 저술들을 남겼는데, 병산서원에서는 이를 출판 간행하였다. 류성룡의 저술은 일본에까지 보급되어 일본의 지식인들에 의해 읽혀졌다. 1662년에는 류성룡의 아들이자 그의 학문을 계승한 류진(1582-1635)을 종향하였다.

만대루

병산서원은 한국 서원의 발전 과정에서 서원의 기능이 교육에서 공론장으로 확장된 사례에 속한 다. 병산서원은 한국 최초로 수천명이 연명한 유소를 올린 서원이며 지역의 공론을 형성하고 종합, 산 출하는 공론장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병산서원에 소장된 다양한 고문서들은 병산서원이 지 역의 공론을 수합하고 조정해 나간 전반적인 사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존덕사

병산서원의 공론장의 기능은 통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통문은 공론 소통의 문서로서 지 역 현안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병산서원에는 경상북도와 대구광 역시, 경상남도의 다양한 서원 및 사림들의 공론을 수합하기 위해 작성된 통문들이 남아 있다.

전경

병산서원의 건축물은 전체적으로 장식을 배제하고 있지만, 만대루를 비롯한 건축물들이 자연경관 과 조화를 이루어 인위적인 장식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원 건축의 단조로움과 자연친화적인 서원 입지와 경관 구성, 자연경관이 건축물과 조화롭게 배치된 탁월한 사례에 속한다. 강당과 사우가 비대칭적으로 강당의 동측 상단에 배치된 것은 같은 도시에 위치한 도산서원의 건축 배치방식과 동일 하다.

입교당 현판

병산서원의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제향시설로 사우 존덕사, 전사청이 있다. 강학시설로 강당 입교당, 재사 동직재, 정허재, 장판각이 있다. 교류 및 유식시설로 만대루, 광명지가 있다. 서원의 중심축 우측에는 서원의 지원을 위한 고직사가 있다.

입교당

서원은 대체로 경관이 수려한 강, 계곡, 그리고 산을 배경으로 입지한 경우가 일반적인데, 병산서원 은 이러한 경관적 요소를 탁월하게 나타낸다. 병산서원은 낙동강과 전면의 산지의 조화를 이룬 곳에 입 지하였으며, 이를 만대루라는 누마루를 통해 건축적으로 구현하였다. 만대루는 7칸으로 구성된 누각이 다. 만대루는 7칸으로 구성된 화면이 각각 다른 장면을 연출헤 줌으로써 서원 앞의 자연 경관을 하나 로 합쳐 극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구조물이 되었다. 만대루는 옥산서원에서부터 처음 도입된 누마루 형 식의 완성도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