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

9개 서원

돈암서원은 1634년 건립되었다.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제와 결합된 강학 건축물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강당인 응도당은 다양한 의례 행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한국의 전통건축과 예학 이론을 결합하여 완성한 건물로 구현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19세기후반 한차례 이 건된 바 있으나, 당시의 이건상황이 세세하게 기록된 자료를 통해 진정성와 완전성을 유지하고자 노력 했던 사항을 증명한다. 이건 과정에서 서원의 원래 입지와의 유사성을 고려한 입지 선정을 통한 노력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원형보존을 전제로 한 이건 과정에서 전통 건축기술의 전승을 이루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제자들과 논산 지역 사림에 의해 건립되었다. 돈암서원은 한국적 실천예학과 한국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禮學) 논의의 산실이었다. 예학이라는 성리학의 이론이 특화되었다는 점은 한국 성리학이 획일적으로 연구된 것이 아닌 특정 분야를 토대로 다양하게 발전되어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각 건축물의 현판들은 성리학적 예(禮)와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판과 장서 등 대부분의 기록물들도 예학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 돈암서원에는 많은 목판들이 소장 되어 있는데, 예학과 관련된 이론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응도당

돈암서원의 주요 제향인물은 김장생(1548-1631)이다. 김장생은 17세기 조선의 예학 연구를 선도해 간 사림으로서 그의 견해는 중앙정계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김장생의 제자들은 돈암서원을 중심으로 특정 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이후 중앙정계의 핵심적인 인물들로 주요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 다. 예학은 전쟁으로 피폐된 국가의 질서를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중시된 성리학 주제 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이후 김장생의 제자인 김집(1574-1656)은 1659년 에, 송준길(1606-1672)은 1888년에, 송시열(1607-1689)은 1695년에 추가로 배향하였다. 돈암서원에 배향된 모든 인물들은 예학 이론을 구체화하는 저서들을 작성하였으며, 이후 서인 학맥의 형성 과정에 서도 이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성리학의 특정 분야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돈암서원은 충청남도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서 지역의 공론과 학문을 주도해갔다. 충청남도 지역의 많은 서원들은 김장생과 관련된 문인, 제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따라서 돈암서원과 건축물이나 교 육 방식, 연구 경향 등에서 유사한 점들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은 충청남도의 중심 서원으로서 돈암서 원의 위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학과 관련된 돈암서원의 학술 특성은 제향인물인 김장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장생은 17세기 전반 예학을 집대성하여 사회에 보급한 인물이다. 따라서 돈암서원은 예학의 완성을 상징하며, 조선시 대 예학의 거점이자 지역 학맥의 거점으로 역할하였다. 예학과 관련된 토론 문화가 돈암서원을 중심으 로 한 충청남도 지역에서 활성화 되었다. 돈암서원의 건립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예학과 관련된 논의가 점차 심화•발전되었으며, 예송논쟁과 같이 국가 정책의 주요 이슈로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를 토대로 돈암서원의 인물들은 김장생을 제향하며, 이러한 전통은 문중과 유림에 의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성당

돈암서원의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제향시설로 사우 숭례사와 전사청이 있다. 강학시설로 강 당 양성당, 응도당과 재사 거경재, 정의재가 있으며, 정회당, 경회당, 장판각이 있다. 이 중에서 양성당과 정회당은 제향인물인 김장생이 생전에 강학 및 성리학 연구를 했던 건물이며, 응도당은 김장생의 예학 이론서에 수록된 것을 김장생의 사후 제자들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교류 및 유식시설은 산앙루가 있 다. 이외에 서원 내외부에는 김장생 및 돈암서원과 관련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숭례사

돈암서원은 예학 실천공간으로서 서원 형식을 크게 혁신하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강당 응도당이 다. 응도당은 전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전면, 측면 2칸 모두 8자로 동일하게 계획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서원 강당 건축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응도당 상부의 목조 공포는 경쾌한 디자인으로 둔 중한 응도당의 형태를 보완하고 있다. 응도당의 설계는 제향인물인 김장생에 의해 기획되었고, 그의 예 학 관련 저술인 『가례집람』에 관련 사항이 도면과 함께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응도당은 건립된 이후 예학논의의 산실로 기능하였다. 예학과 관련된 토론, 저술활동은 응도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어갔다. 현 재 돈암서원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자료들은 응도당에서 작성된 것들이다.

응도당

신청유산인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건립된 사립 교육 시설이다. 신청유산은 16세기 중반 부터 약 1세기 동안 건립되었다. 이 시기는 한국 서원 역사의 도입기에 해당되며 지역별로 다양한 건축 배치 및 기법들을 시험적으로 적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제향•강학•교류와 유식이라는 건축유형의 정 형을 수립하였다. 또한 자연 경관을 서원의 구성요소로 끌어들인 점도 한국 서원의 특성이다.

정회당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주희가 세운 백록동서원의 제향, 강학, 장서 등의 기능을 재해석하 여 교육기관으로서 필요한 건축 요소를 도입하였다. 건축의 배치와 기능도 제향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 하였으며, 교육목표로 과거와 같은 관료 진출보다는 성리학 교육을 통한 지식인의 양성에 중점을 두었 다. 신청유산은 관립보다는 사립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실질적인 운영과 교육활동은 지방지식인인 사림 이 주도하였다. 이와 같은 사림주도의 건립과 운영은 남계서원에서부터 보편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