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서원

9개 서원

무성서원은 1615년 건립되었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원 건립을 주도했던 사림들 이 활동하였던 마을 인근에 입지하고 있다. 무성서원은 다른 서원과 달리 자연 경관보다는 서원의 제 향인물들이 활동하던 지역 인근에 입지한 특징을 보여준다.

무성서원은 전라북도 사림 활동의 거점이자 지방 교육과 교화를 지향하는 한국 서원의 특징을 보 여주면서 지역화와 그 정착, 발전 단계를 보여준다. 또한 향약의 시행과 20세기 초 항일의병의 근거지였 다. 서원과 인접한 마을에 지역 사족활동의 다양한 유적들이 함께 남아 있다.

무성서원의 제향인물은 최치원(857-?), 정극인(1401-1481), 송세림(1479-?), 신잠(1491-1554), 정 언충(1706-1772), 김약묵(1500-1558), 김권(1549-1622)이다. 이들 모두 정읍 지역 흥학과 관련된 사회 활동을 한 관료와 지역 사림이다. 이들은 향촌교육과 연계되어 성리학의 가치를 보급하고, 학문을 권장 한 인물들로 이들을 제향인물로 선정하는 것은 성리학의 사회 교화와 실천을 실현한 모범 사례로서 가 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서원들이 제향인물을 지역사회의 강학활동과 성리학 연구를 중심으로 선정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설경

무성서원은 지역 전통 의례와 결합되어 제향 의례 전에 서원 입구에서 서원 경내의 건물 마당을 거쳐 제향공간까지 황토를 뿌리는 특이한 사례가 주목된다. 황토흙의 길을 만드는 것은 이 서원의 특징인 데, 선현께 올리는 신로와 제물을 신성시하여 일체의 사사로운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한다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다. 무성서원은 현재까지 지역 주민과 서원 구성원들에 의해 제향의례가 시행되고 있다.

후경

무성서원은 성리학이 사림을 중심으로 기층민까지 영향을 주는데 있어 서원의 역할을 보여준다. 무성서원은 지역의 교육, 흥학 전통을 토대로 건립된 사례로 서원이 가진 기능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 는 과정을 대표한다. 무성서원은 사림들의 흥학당을 기원으로 하며 이후 흥학을 주도한 사림들을 기리 는 사우로 발전하였고, 이것이 서원 건립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명륜당

성리학의 사회전파와 관련하여 사림활동 중 가장 대표되는 것은 지역 자치규약인 향약이다. 무성 서원은 인근지역 향약의 거점으로 기능하면서 지역민 결집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향약과 관련성이 높은 무성서원의 특성은 강학 의례에도 반영되어 향약 의례의 하나인 향음주례(鄕飮酒禮) 등이 포함 되어 있다. 지역 사회 결집 역할은 20세기 초 일 본의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병오창의에까지 영향 을 끼쳤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 기 위하여 무성서원에는 병오창의기념비가 있으 며, 정기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무성서원 은 19세기말까지 훼철되지 않고 운영된 전라북 도의 유일한 서원이다.

내삼문

무성서원 주위에는 지역 성리학자들과의 연 계성이 있는 누마루와 사우들이 존재하며, 사액 현판을 비롯하여 학규, 제향인물과 관련된 사건 등을 알 수 있는 기록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태산사

무성서원의 주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제 향시설은 사우 태산사가 있다. 강학시설은 강당 명륜당과 재사 강수재가 있다. 강수재는 다른 서원과 달리 강당 앞마당 좌우에 있지 않고 별도로 조성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류 및 유식시설로는 현가루가 있다. 이 외에 무성서원에는 서원과 관련된 다수의 기념비들이 서원 내외부에 분산되어 세워져 있다.

무성서원의 재사인 강수재 앞에는 기념비 하나가 서있다. 이 비는 1906년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 하는 의병활동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최익현과 임병찬이 중심이 된 의병창의는 무성서원의 강회와 유 림 동원력, 대표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무성서원의 정신사적 위상과 지성사적 전통을 보 여준다. 무성서원에서는 해마다 병오창의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여 이를 기념하고 정신적으로 계승 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